포에르 에 산드리와 노지올라, 트렌티노의 자연을 담은 와인 이야기
트렌티노의 보석, 포에르 에 산드리를 만나다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의 그림자 아래 자리한 트렌티노-알토 아디제 주. 이곳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만이 아닌, 깊은 역사와 독특한 품종이 숨겨진 와인 명산지입니다. 그 중심에서 잊혀져 가는 토착 품종을 되살리고, 자연의 순수한 표현에 집중하는 한 와이너리가 있습니다. 바로 포에르 에 산드리(Pojer e Sandri)입니다. 마리오 포에르와 피에로 산드리가 1975년에 설립한 이 작은 와이너리는 이제 트렌티노를 대표하는 가장 혁신적이고 존경받는 생산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들의 철학은 간결하지만 강력합니다. '땅의 목소리를 듣는 것'. 이 철학은 스끼아바(Schiava), 노지올라(Nosiola) 같은 토종 품종을 복원하는 작업에서부터, 최소한의 개입으로 와인을 만드는 자연주의적 접근법까지 모든 면에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잊혀진 품종의 수호자, 노지올라의 재발견
포에르 에 산드리의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노지올라'입니다. 노지올라는 트렌티노 지역에 뿌리를 둔 매우 오래된 백포도 품종으로, 그 이름은 이탈리아어 '노치올로(nocciolo, 개암나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포도 알이 개암나무 열매 색을 띤다 하여, 혹은 포도나무 잎 뒷면의 솜털이 개암나무 잎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노지올라는 생산량이 적고 재배가 까다로워 점점 사라져 가는 품종이었습니다. 그러나 포에르 에 산드리는 이 보물 같은 품종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하며 되살려냈습니다. 그 결과, 노지올라는 이제 트렌티노를 상징하는 품종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으며, 포에르 에 산드리는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노지올라로 신선하고 미네랄 감이 풍부한 스틸 화이트 와인부터, 지역 전통 방식인 '빈 산토(Vino Santo)' 스타일의 디저트 와인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표현: 제로 인피니토 시리즈
포에르 에 산드리의 핵심 철학은 '제로 인피니토(Zero Infinito)'라는 라인에 가장 잘 드러납니다. 이 이름은 '영점(Zero)'과 '무한대(Infinito)'의 결합으로,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0에 가깝게)하여 포도와 테루아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자료에서 언급된 '제로 인피니토 크레미시(Zero Infinito Cremisi)'입니다. 이 와인은 '세바르(Sevar)'라는 레드 포도 품종을 사용해 고대 방식으로 만든 네츄럴 로제 와인입니다. 발효는 자연적으로 일어나며, 첨가물은 최소화됩니다. 그 결과는 놀랍도록 생동감 있고 직관적인 와인으로, 마치 포도즙을 그대로 마시는 것 같은 생생함을 선사합니다. '낮 술이 당긴다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복잡한 맛의 층위를 보여주는 이 와인은 자연주의 와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 와인 명 | 주요 품종 | 와인 스타일 | 주요 특징 |
|---|---|---|---|
| Zero Infinito Cremisi, NV | Sevar (세바르) 100% | 네츄럴 로제 (Natural Rosato) | 고대 방식 제조, 자연 발효, 첨가물 최소. 생동감 있고 직관적인 맛. |
| Nosiola, Trentino DOC | Nosiola (노지올라) 100% | 스틸 화이트 와인 | 트렌티노 대표 토종 품종. 신선한 산미와 미네랄, 은은한 허브 향. |
| Vino Santo, Trentino DOC | Nosiola (노지올라) 100% | 디저트 와인 (패시토) | 건포도를 발효시켜 만든 전통 디저트 와인. 꿀, 말린 과일, 견과류의 풍부한 향미. |
| Schiava, Trentino DOC | Schiava (스끼아바) 100% | 레드 와인 | 가벼운 바디, 산뜻한 붉은 과일 향, 부드러운 탄닌. 일상적인 마시기 좋은 레드. |
포에르 에 산드리의 와인 만들기 철학
포에르 에 산드리의 성공은 단순히 오래된 품종을 재배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포도원 관리에서 병입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자연과의 협업'을 실천합니다.
- 유기농 및 생역동 농법: 포도원에서는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농법을 기반으로 합니다. 때로는 생역동 농법의 원리를 적용하여 포도밭을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조화를 추구합니다.
- 최소한의 개입: 와이너리에서는 자연 발효를 선호하며, 불필요한 첨가물 사용을 극도로 제한합니다. 여과와 정제 과정도 최소화하여 포도가 가진 원초적인 에너지와 풍미를 와인에 고스란히 담아내려 합니다.
- 토착 품종에 대한 깊은 이해: 각 품종이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포도원 위치(해발, 토양, 방향)를 세심하게 선택합니다. 노지올라의 경우, 잘 배수된 석회암 토양과 고도가 높은 구릉지에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 지속 가능성: 모든 과정은 환경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합니다. 그들의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트렌티노의 풍토, 역사, 그리고 자연의 산물입니다.
노지올라 와인의 매력과 페어링
포에르 에 산드리의 노지올라 와인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일반적인 노지올라 스틸 화이트 와인은 밝은 짚색을 띠며, 신선한 사과, 배, 복숭아와 같은 과일 향과 함께 독특한 미네랄 감과 은은한 허브, 흰 꽃의 아로마가 느껴집니다. 산미가 활기차고 균형 잡혀 있어 맛이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다양한 요리와의 페어링이 가능합니다.
- 트렌티노 지역 요리: 현지의 산치미(발효 양배추와 소시지), 카네데리(만두 요리), 강 근처에서 나는 송어 요리와 환상적으로 어울립니다.
- 해산물 : 생선 회, 그릴에 구운 흰살생선, 갑각류 요리와 함께하면 와인의 미네랄리티가 해산물의 감칠맛을 한층 돋우어 줍니다.
- 가벼운 탭나스 : 야채 튀김, 치즈 프리타타, 생햄과 멜론 등 가벼운 안주와도 좋은 조화를 이룹니다.
- 비네 산토(Vino Santo) : 디저트 와인인 비네 산토는 강렬한 당도와 산미의 균형을 이루며, 푸딩, 블루치즈, 마지팬 디저트, 혹은 단독으로 디저트처럼 즐기기에 완벽합니다.
한국에서 포에르 에 산드리 와인 즐기기
자연주의 와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포에르 에 산드리의 와인들도 한국에서 점점 더 찾기 쉬워지고 있습니다. 특유의 신선함과 정직한 맛은 한국의 다양한 음식과도 잘 어울립니다. 노지올라 화이트 와인은 비빔밥이나 해물파전, 매콤하지 않은 탕수육과 함께해도 좋습니다. 제로 인피니토 크레미시 같은 가벼운 레드/로제는 불고기나 야채 구이와 함께 즐기기에 부담이 없습니다. 자연주의 와인은 병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불확실성 그 자체가 매력이 될 수 있습니다. 포에르 에 산드리의 와인을 즐길 때는 완벽함을 기대하기보다는, 트렌티노의 한적한 언덕과 포도밭을 떠올리며, 자연이 선물한 생생한 풍미에 집중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 병의 와인이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하나의 여정이 될 수 있음을 포에르 에 산드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포에르 에 산드리는 트렌티노의 정체성을 지키고 미래로 이어가려는 진정한 테루아르의 수호자입니다. 그들이 노지올라를 비롯한 토착 품종에 쏟는 열정, 그리고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심은 병에 담긴 와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의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알프스의 바람, 트렌티노의 햇살,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포도 재배의 역사를 한 모금에 느끼는 일입니다. 다음번에 와인을 고를 때, 이름은 낯설지만 그 뒤에 숨은 이야기가 풍부한 포에르 에 산드리의 노지올라를 기억해보세요.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한 지역의 혼을 발견하는 여정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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