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드라이 리슬링의 정점, 켈러 폰 데어 펠스 리슬링 트로켄 2012
독일 와인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리슬링입니다. 달콤한 아이스바인이나 베렌아우슬레제의 세계에서는 에곤 뮐러(Egon Müller)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건조한 스타일, 즉 드라이 리슬링의 세계에서는 켈러(Keller)의 이름이 단연 돋보입니다. 수많은 애호가와 비평가들이 극찬하는 이 명성의 정점에는 'G-Max'가 있지만, 그 진입문이자 켈러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와인 중 하나가 바로 '폰 데어 펠스(Von der Fels)' 리슬링 트로켄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숙성의 매력을 충분히 발현한 2012 빈티지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리슬링의 명가, 바인굿 켈러(Weingut Keller)
라인헤센(Rheinhessen) 지역의 플롬하임(Flörsheim-Dalsheim)에 위치한 바인굿 켈러는 1789년부터 이어져 온 가족 역사를 가진 명실상부한 독일 최고의 와이너리입니다. 클라우스 페터 켈러(Klaus Peter Keller)와 그의 아내 쿠니구데(Kunigunde)가 이끄는 이 와이너리는 VDP(독일 프레디커트 와인 생산자 협회)의 일원으로, 최고급 포도원 'Grosse Lage'에서 극도의 엄선과 세심한 작업을 통해 위대한 와인을 탄생시킵니다. 켈러의 와인은 단순히 과일의 풍미를 넘어서 광물질, 정밀함, 엄청난 집중도, 그리고 놀라운 장수성을 지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드라이 리슬링에 대한 그들의 집념은 'G-Max'가 세계 최고가 와인 중 하나로 거론되게 만들었습니다.
켈러 드라이 리슬링의 핵심: 폰 데어 펠스(Von der Fels)
'폰 데어 펠스(Von der Fels)'는 독일어로 '바위에서'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 이름은 이 와인의 핵심 정체성을 잘 설명해줍니다. 여러 최고급 포도원(Grosse Lage)의 젊은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들어지는 이 와인은 켈러의 기본 라인업인 '리슬링 트로켄'보다 한 단계 위에 위치한 '오르츠바인(Ortswein, 마을 와인)'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그 품질은 많은 생산자의 최상급 와인을 뛰어넘습니다. 화강암과 적색 사암이 혼합된 헤센 지역의 독특한 토양, 즉 '바위'에서 우러난 광물질 감각이 이 와인의 백본을 이루며, 켈러 특유의 정교한 양조 기술이 더해져 탄생하는 것이 바로 폰 데어 펠스입니다. 이 와인은 켈러의 드라이 리슬링 세계에 입문하기에 가장 완성도 높고 접근성 좋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켈러 폰 데어 펠스 리슬링 트로켄 2012 빈티지 분석
2012년은 독일 전역에서 꽤 도전적인 빈티지였습니다. 늦은 봄의 서리, 개화기와 수확기 사이의 변덕스러운 날씨, 그리고 10월의 장마까지 겹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신중하고 실력 있는 생산자에게는 오히려 빛을 발휘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엄격한 포도 선별과 낮은 수확량을 고집하는 켈러에게 2012년은 결실을 맺기 어려운 해였을 수 있으나, 그들이 만들어낸 와인은 그 해의 어려움을 극복한 놀라운 집중도와 복잡함을 보여줍니다. 2012 빈티지는 비교적 빠르게 접근 가능한 매력을 지녔지만, 동시에 켈러 와인 특유의 장수성도 기대할 수 있는 빈티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주요 와인 비평가들의 평점을 통해 그 가치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매체/비평가 | 평점 | 간략 코멘트 |
|---|---|---|
| Wine Advocate (WF) | 94 | 강렬한 광물질과 생동감 있는 산도, 우아한 여운. |
| Jancis Robinson (JR) | 17/20 (2014년 10월) | 매우 매력적. 복잡한 향과 깔끔한 마무리. |
| CellarTracker (CT) | 91 (사용자 평균) | 균형 잡힌 구조와 발전된 풍미에 대한 호평. |
| Vinous (JG) | 94 | 텍스처가 뛰어나고 에너지가 넘치는 스타일. |
2012 빈티지의 테이스팅 노트와 음식 페어링
2015년이나 2016년에 시음된 노트들을 종합해보면, 2012년 빈티지는 발매 초기의 날카로운 젊음보다는 숙성의 첫 단계에 진입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 외관: 선명한 골드 옐로우 색상에 녹색 빛이 감도는 모습.
- 향: 익은 복숭아, 살구, 배 같은 백색 과일과 함께 생강, 허니써클, 섬세한 흰 꽃 내음이 느껴집니다. 켈러 특유의 화산암과 플린트에서 비롯된 냉철한 광물질 향이 뒷받침되어 매우 복잡한 아로마를 구성합니다.
- 맛: 입안에서는 풍부한 과일 풍미와 날카롭면서도 우아한 산도가 완벽한 균형을 이룹니다. '드라이(Trocken)'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풍성한 과일감이 있지만, 끝맛은 광물질 감각과 함께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탄산감(프리츠)은 미묘하게 느껴져 생동감을 더합니다. 여운이 길고 신선합니다.
- 음식 페어링: 이 와인의 높은 산도와 광물질 감각은 다양한 요리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룹니다.
- 생선 요리: 조리된 흰살생선(도미, 대구)에 버터 레몬 소스를 곁들인 요리.
- 갑각류: 그릴에 구운 랍스터, 새우, 가리비.
- 가금류: 로스팅한 치킨이나 퀘일.
- 퓨전 요리: 미슐랭 스타일의 정교한 요리나 향신료를 적당히 사용한 아시아 요리(예: 타이 커리).
- 치즈: 고다, 그뤼에르 같은 경질 치즈나 산미가 강한 염소 치즈.
켈러 와인을 찾는 이들을 위한 조언
켈러의 와인, 특히 드라이 리슬링은 그 명성에 비해 시중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산량이 제한적이고 수요가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기본 라인인 '리슬링 트로켄'조차도 구하기가 쉽지 않으며, '폰 데어 펠스'나 싱글 빈야드 와인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 구입처: 전문 와인 샵, 고급 리테일러, 온라인 와인 몰, 경매 사이트 등을 통해 가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리 입고 소식을 받아보거나 웨이팅 리스트에 등록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 가격대: 폰 데어 펠스는 켈러의 고급 라인업에 속하지만, G-Max나 Abtserde, Hubacker 같은 최상급 싱글 빈야드 와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대를 형성합니다. 빈티지와 상태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큽니다.
- 숙성 가능성: 켈러의 와인은 장기 숙성에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2 빈티지 폰 데어 펠스도 현재는 아름다운 음용 가능 시기이지만, 적절한 저장 조건(13-15°C, 70% 습도, 어두운 곳)에서는 앞으로 5-10년 이상 더 발전할 여지가 충분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복잡한 2차, 3차 향(석유, 훈제, 허니 등)이 발현될 것입니다.
마치며: 드라이 리슬링의 교과서
켈러의 폰 데어 펠스 리슬링 트로켄 2012는 단순히 맛있는 와인을 넘어서, 독일 드라이 리슬링이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교과서 같은 존재입니다. 힘과 우아함, 과일과 광물질, 집중도와 음용의 즐거움을 동시에 갖춘 이 와인은 와인 애호가라면 꼭 한 번 경험해봐야 할 필수 코스에 해당합니다. 에곤 뮐러의 달콤함이 독일 리슬링의 한쪽 정점이라면, 켈러의 드라이함은 또 다른 정점을 보여줍니다. 2012년의 이 보틀은 그 거대한 세계로 들어가는 완벽한 초대장이자, 이미 상당한 완성도를 갖춘 걸작으로서 지금 이 순간에도 충분히 즐길 가치가 넘치는 와인입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