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멘 드 꾹셀의 명작, 뽀마르 프리미에 크뤼 그랑 끌로 데 제쁘노 2017

뽀마르의 심장부에서 태어난 순수함

부르고뉴의 와인을 이야기할 때, 그 정점에는 언제나 특정한 클리마(Climat)와 그것을 지키는 생산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코트 드 보느(Côte de Beaune)의 남성적이고 힘찬 매력으로 유명한 뽀마르(Pommard) 마을에서, '끌로 데 제쁘노(Clos des Épenots)'는 가장 빛나는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리고 이 우아한 클리마의 한 구획을 '모노폴로(Monopole)', 즉 단독 소유하며 그 진정한 정수를 보여주는 도멘이 바로 도멘 드 꾹셀(Domaine de Courcel)입니다. 오늘은 이 도멘의 핵심이자 자부심인 '그랑 끌로 데 제쁘노(Grand Clos des Epenots)' 2017 빈티지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도멘 드 꾹셀: 뽀마르의 순수주의자

도멘 드 꾹셀은 16세기부터 이어져 온 뽀마르의 대표적인 가족 도멘입니다. 약 400년의 역사를 지닌 이 도멘은 뽀마르 마을 중심부에 위치하며, 오직 프리미에 크뤼 포도원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끌로 데 제쁘노'는 도멘의 가장 중요한 자산입니다. 도멘 드 꾹셀의 철학은 간결하면서도 확고합니다. "모노폴로 생산해야 그 밭의 특징을 오롯이 드러낼 수 있다." 이 한 문장이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단일 품종(피노 누아), 단일 클리마, 그리고 단일 생산자가 포도원 전체를 통제함으로써 테루아르(terroir)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죠. 이들은 긴 숙성 기간, 낮은 수확량, 최소한의 개입을 원칙으로 하여 와인에 깊이와 정교함을 불어넣습니다.

클리마: 그랑 끌로 데 제쁘노의 정체성

'끌로 데 제쁘노'는 뽀마르 북부에 위치한 약 10헥타르 규모의 프리미에 크뤼 클리마입니다. 이 중 도멘 드 꾹셀이 소유한 5.5헥타르의 구획이 바로 '그랑 끌로 데 제쁘노'입니다. '클로(Clos)'는 담으로 둘러싸인 포도원을 의미하며, 이는 역사적으로 우수한 지위를 상징합니다. 이 포도원은 해발 250-300미터에 자리잡고 있으며, 경사면 중간부(mid-slope)에 위치해 최적의 일조량과 배수를 확보합니다. 토양은 깊은 적색 점토와 석회암이 혼합되어 있어, 뽀마르 특유의 힘과 구조감을 부여하면서도 섬세함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줍니다. 도멘 드 꾹셀은 이 땅의 잠재력을 믿고, 포도나무의 평균 수령을 매우 높게 유지하여 복잡한 풍미를 이끌어냅니다.

구분 내용
생산자 도멘 드 꾹셀 (Domaine de Courcel)
지역 (AOC) 뽀마르 프리미에 크뤼 (Pommard Premier Cru)
클리마 (단일 포도원) 그랑 끌로 데 제쁘노 (Grand Clos des Epenots) - 모노폴로
빈티지 2017
품종 피노 누아 (Pinot Noir) 100%
포도 수령 평균 50년 이상 (일부는 80년 이상의 노포도나무)
양조 방식 전통적 방식, 긴 냉침포, 자연 발효, 새 오크통에서 18-24개월 숙성
주요 특징 뽀마르의 힘과 구조감, 도멘 드 꾹셀 특유의 우아함과 섬세함이 공존. 장기 숙성 가능.

2017 빈티지와 와인 스타일

2017년은 부르고뉴 전반에 걸쳐 비교적 평온했던 해입니다. 봄의 서리 위험을 피해간 후,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이 이어졌으며, 수확기에는 이상적인 조건을 맞이했습니다. 이로 인해 건강한 포도와 균형 잡힌 산도를 가진 와인이 탄생했죠. 도멘 드 꾹셀의 2017 그랑 끌로 데 제쁘노는 이러한 빈티지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도멘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이 와인은 전형적인 뽀마르의 힘과 근육질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도멘 드 꾹셀 특유의 세련됨과 우아함으로 이를 감싸고 있습니다. 강력한 탄닌보다는 부드럽고 실크처럼 감기는 텍스처가 인상적이며, 신선한 산도가 와인에 생동감을 부여합니다. 2017년의 특성상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측면도 있지만, 그 깊이와 복잡성은 확실히 프리미에 크뤼의 위상을 말해줍니다.

테이스팅 노트와 음식 페어링

젊은 시절의 2017 그랑 끌로 데 제쁘노는 밝은 루비색을 띱니다. 코에서는 익은 적과인 체리, 라즈베리와 같은 붉은 과실 향이 선명하게 느껴지며, 그 뒤를 이어 보카세(Boccace)의 가죽, 약간의 시나몬과 정향 같은 스파이스, 그리고 미네랄리티가 은은하게 어우러집니다. 오크의 영향은 매우 절제되어 와인의 과실 특성을 가리지 않습니다.

입안에서는 신선한 과실의 달콤함과 정교한 산도가 먼저 다가오며, 중간에서 여운에 걸쳐 부드럽고도 확실한 탄닌이 퍼져나갑니다. 힘이 있으면서도 우아한 여운이 길게 이어지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복잡한 향과 맛을 보여줄 잠재력을 느끼게 합니다.

  • 음식 페어링: 이 와인의 구조감과 우아함은 다양한 요리와 잘 어울립니다. 로스팅한 어린 양고기, 오리 콩피, 버섯 소스를 곁들인 비프 부르기뇽, 깊은 풍미의 그릴드 포르치니 버섯 등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룹니다. 또한, 숙성된 하드 치즈와도 훌륭하게 매칭됩니다.
  • 적정 음용 온도: 14-16°C 정도가 적당합니다. 너무 차갑게 하면 향과 풍미가 제대로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디켄팅: 현재 시음 시 1시간 정도 디켄팅하면 닫혀있는 향이 더욱 열리고, 탄닌이 부드러워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숙성 가능성과 소장 가치

도멘 드 꾹셀의 와인은 장기 숙성에 대한 뛰어난 가능성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2004년과 같은 어려운 빈티지도 시간이 지나며 놀라운 균형과 복잡함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죠. 2017년은 비교적 일찍 즐길 수 있는 빈티지이지만, 그 구조와 균형감은 중장기적인 숙성도 충분히 감당할 만합니다. 적절한 저장 조건(13-15°C, 70% 내외 습도, 어둠, 진동 없음) 아래에서는 향후 10-15년, 혹은 그 이상까지도 진화하며 더욱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모노폴로라는 희소성과 도멘의 확고한 철학은 이 와인에 수집과 투자의 가치까지 더해줍니다.

마치며: 테루아르의 진정한 메신저

도멘 드 꾹셀의 뽀마르 프리미에 크뤼 '그랑 끌로 데 제쁘노' 2017은 단순히 한 병의 와인이 아닙니다. 이는 한 포도원의 정체성과, 그것을 수백 년 동안 지켜온 한 가족의 신념이 결집된 결과물입니다. '모노폴로'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것처럼, 이 와인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뽀마르의 힘과 도멘 드 꾹셀의 우아함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이 명작은, 부르고뉴 와인의 진수인 '장소의 표현'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귀중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지금 즐겨도 좋지만, 조금 더 기다려 그 진가를 마주한다면 더욱 값진 보상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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